원작: 이역의 산장
형식: 기타
유형: -
작성자: 김병한
이역의 산장 제1장
2024.08.12 월 오전 2:28 ・ 32분 40초
김병한
눈보라가 휘말리는 황토산이었다. 핫바지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저편 고개에서 달려오는 노인이 있었다.
골짝으로만 골짝으로만 내닫는 노인의 몸짓은 그게 얼핏 사람이 아니라 토끼가 껑충거리는 듯한 몸가짐이었다.
손에 잡힐 것이라곤 잔디 하나가 없는 황토산에서 수없이 넘어지며 달려오는 탓이리라.
그 노인의 손에 낯이 들려 있고 발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노인의 발자국이 놓인 때마다 금방금방 엉기는 핏방울이 흰 눈 속에 빨간 꽃잎을 뿌린 듯 선연하였다.
그리고 눈보라에 휩쓸려 아련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사람 살리소오."
그게 세찬 눈보라 속에서 굉장히 힘을 뽑아 부르짓는 외마디소리일 것이었다.
방금 총소리가 연달아 울렸던 까닭에서리라.
어느새 노인이 아래의 골짜기에까지 왔다고 느꼈다.
문득 얼음장이 깔린 개울에 앞이 막혔다. 퍼석 엷은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가벼운 음향을 그으며 물살 속에 젖어들었다.
잠시 후 개울을 건넌 노인은 그대로 논을 가로질렀다.
그리 높지 않은 논을 격한 저편 기슭에 조그만 초가가 한 가우(假寓) 어지러운 눈발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에이 고얀 놈들!"
집 앞에까지 다다른 노인이 거의 본능적으로 낫을 팽개치고 대문을 두들기다가 까무러쳐버렸다.
한참 만에 이 집 여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이 마흔 살쯤 나보이는, 허리가 후릿한 여인이었다.
여인의 휘둥그려 안 눈이 자못 겁내 하는 표정이었다.
대문을 열지 않고 거기 단 밑에 있는 확 위에 올라서서 조심스레 대문길을 살폈다.
그리고는 가만히 내려서서 대문 앞으로 가 빗장을 뽑았다.
분명 좀 전에 총소리에 놀라서 쫓겨온 사람이리라.
여인이 노인을 사랑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피 흐르는 곳부터 보았다.
그새 산지 피가 엉겨서 까맣게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만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타나이 발 뒤꿈치와 멋은 것이다.
피를 대강 씻고 우선 소금으로 뜯어다 소복이 쌓아주었다.
누구든 간에 우선 살려놓고 봐야 할 일 같았다. 이불을 갖다 얼마든지 씌워줬다.
그리고 우선 미음이라도 한 그릇 끓이려는데 나무가 없는 것이다.
어저께 닭장을 부어서 떼고 남은 넓 반지가 몇 조각 남았을 뿐이었다.
이거 나마 아끼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었다. 광으로 왔다.
녹두와 메미를 한 사발 가량 냈다. 오랫동안 불을 넣지 못한 사랑채의 솥이 빨갛게 녹슬어 있는 것이다.
이웃고 불을 지핀 여인이 손에 간다랗게 떨렸다. 또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쿵쿵 쿵쿵 쿵쿵 땅 따르 아련히 울려오는 총소리가 차차 가까이 들려왔다.
여인은 그만 아궁이 어플을 발로 으깨버리고 쏜살같이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의 이불 위에 무명소유를 갔다. 허얗게 덮씌웠다.
그리고 신을 아궁이에 넣어버린 다음 안 채로 달려왔다.
가슴이 산발같이 떨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눈을 갖다 창구멍이 되고 압산을 보았다.
붉은 띠를 띄고 왼편 골짝으로 새까맣게 달아나는 한 때의 산 사람들을 향해 이쪽 봉우리에서 간단 없는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좀 뒤에서는 서너 시씩 둘러싼 두 표의 사람들이 연달아 총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봉우리에는 태극기가 팔락거리고 있고 정말 경찰이 들어왔는가 보다.
그래서 지금 산 사람들을 쫓고 있는 것이라 여인은 자기도 모를 눈물이 주르룩 뺨을 타고 흘렀다.
그와 함께 죽은 아들의 피 어린 얼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나무 한 그루가 없는 민둥산으로 쫓겨온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알만하다.
필경 강진경찰서와 장흥 경찰서에서 합작해 가지고 모으는 것이리라.
붉은 띠를 뛴 사람들이 그새 봉우리개까지 올라갔다고 느꼈다.
그새 수가 반은 줄어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쓰러진 시체 옆에는 빨간 피가 눈을 녹이며 있었다.
쿵쿵 땅 따르를 그러더니야 산 사람들이 아주 고개를 넘어 수자 총 소리는 그대로 맞고 말았다.
이현에서 정지를 하던 모자의 허연 태를 두른 사람 한 사람이 아래 골짝을 타고 내려왔다.
연애 이쪽을 건너다 보는 폼이 분명 자기 집을 목격하고 오는 것 같았다.
여인은 그만 깜짝 일어서서 항아리 속으로 가 숨어버렸다.
다시금 가슴이 산발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무릎의 치마도 달달 떨렸다.
그런 여인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는 다른 또 하나의 두려움이 마음을 태우는 것이다.
만일 몸을 망친다면 지난번 인민군이 들어올 때 여인은 9살에게 몸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고 단지 하나이던 아들이 죽고 남편이 붙잡혀 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여인은 그때 놀란 가슴이 아직도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다.
살도 먹먹하였다. 여인은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가져다 삿을 가리며 와들와들 떨었다.
그리고 가슴을 저이며 있는 때였다. 문득 가다랗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저 건너 집에 태극기 꽂아라. 잠시 후 다시 경찰이다.
저 건너 집에 태극기 꽂아라. 필시 개울에 막혀서 못 오고 거기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싫어
순간 여인의 얼굴에 화색이 들었다. 어느새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 있었다.
항아리 속에서 나온 여인은 그러나 선뜻 나가지를 못했다.
다시 장국에 눈을 대고 바깥을 살폈다. 태극기가 거치고 경찰이 가볍다.
여인이 태극기를 찾아 들고 막 밖으로 나오는 때였다.
또 한 사내가 이젠 동편 고개에서 머리를 흩날리며 이리로 내달려오는 것이다.
서른 남짓한 장년 산으로서 흰 핫바지, 검정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산에는 웬 다름질이 또 저렇게 날센 것일까 허얀 눈발 속에서 검정 헝겁 조각만이 날아오듯 산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뒹구는 법 한 번 없이 잘도 아래 골짜기까지 내려왔는가 하자 펑 거울로 뛰어들었다.
얇은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먼저 본 노인이 건널 때보다 한결 요란스러운 음향을 그으며 물살 속에 젖어들었다.
어느새 사내가 물속에서 나왔다. 그리고 금세 눈을 가로 질렀는가 하자 주인, 문 좀 여시오.
여인이 이미 가구가 있었던 듯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냉큼 빗장을 뻗다 나 좀 감춰주시오 아주머니.
그런 사내의 입가에 계거품이 개어 있고 턱이 반나마 처져 있었다.
사내는 거의 쓰러질 듯한 머리를 갖다 여인의 어깨에 기대며 어서 좀 감춰주시오.
그런 가운데서도 사내는 귀엽고 뒷선 비타를 한 번 돌아봤다.
행여 자기를 쫓은 사람이 그새 3미터에나 나타나지 않았나 하고 여인이 무심코 사내의 발을 내려다봤다.
눈에 묻힌 발이 신을 거꾸로 돌려 신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내의 발자국은 펑펑 날리는 눈으로 해 그의 자취가 없어지며 있었다.
여인이 잠자고 손을 뒤로 돌려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뒷들로 돌아갔다.
사내가 따라가자 애인은 바로 굴뚝 옆 항아리 앞으로 가서 가운데 항아리 하나를 틀어 옮겼다.
항아리 밑에 또 하나의 항아리가 있는 것이다. 그 놈은 땅에 묻혀 있었다.
이전 인민군이 들어올 몸을 망치고 나서 들어가 있던 항아리였다.
사내가
곧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자 여인은 이 항아리를 다시 제자리에 옮겨놓고 방금 자기들이 돌아온 발자국을 보았다.
발자국은 여전히 펑펑 날리는 눈에도 배인의 자취가 없어지며 있었다.
여인이 광 뒷문으로 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새 누른 복장을 한 두 사례가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사람 안 왔느냐는 것이다.
여인은 냉큼 태극기부터 구여서 품 속에 넣고 마루로 나섰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장총을 들고 한 사람은 죽창을 들고 있었다.
온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인의 대답 같은 거 아예 들을 생각도 아닌 듯 방으로 썩 들어와서 광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들을 하였다. 여하튼 당내 숙청부터 먼저 할 걸 우리 실책이야 글쎄 그런 놈을 숙청 안고 두니까 이런 사태 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아.
그래도 머음을 산 놈이라서 사상이 좀 확고한 줄 알았더니 그 모양 아니냐
그리고 그들은 광을 나와 부엌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부엌에서 웅크리고 자던 늙은 수케가 왕왕 달게 들 듯 찢어댔다.
이때껏 총소리가 울려도 죽은 시중만 하고 있다. 비로소 산업계에 으렁 되는 것이다.
부엌에는 단지 살각 밑에 물동이가 하나 있을 뿐 달리 의심갈 만한 곳이 없었다.
그들이 사랑처로 갔다. 순간 여인은 가슴이 두고 나 있다.
거기 있는 노인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죽창을 든 사내가 문을 잡혔다.
그리고 이렇게 덮어놓는 무명 소리를 푹 찌르며 이게 뭐야 노인이 아야야 하고 가냐는 비명을 울렸다.
그러자 총을 맨 사내가 들어가 이불을 제끼며 이게 누구야 여인이 태현이 저의 아버지 올시다.
늙은 아버지가 왜 방금 날아오는 총알에 발을 상했습니다.
정말 그들은 여인을 이 아래로 훑어보다가 한참 만에야 방을 나와 뒤틀로 돌아갔다.
여인은 되도록 대안하려 하였다. 이미 항아리 속의 산에는 자신의 천명에 막힌 것이다.
존만의 절그럽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여인은 다시금 죽은 아들의 피어린 얼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철그럭 철그럭 이웃 새 항아리가 다 깨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가여 그들이 앞으로 돌아나왔다. 총을 맨 사례가 대문을 나서며 아무튼 시기는 늦었어 그럼 어서 빨리 가자고 한 머리 싸움이 지나간 산골짝은 여기저기 시치하니 어지러이 널려 있고 그 위에는 흰눈이 여전히 내려 덮고 있었다.
노인과 함께 사랑에서 잔 젊은 사내가 이튿날 아침 여인께 눈이 사의를 표하면서 가야겠다고 했다.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인이 그러고 말고냐 하면서 어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노인만은 선뜻 떠날 기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갓 발을 다친 데서만은 아닌 듯 했다.
돌아갈 곳이 막연해서인 듯했다. 너희는 이불을 안만 들어도 몸이 자꾸만 떨렸다.
발 뒤꿈치도 사뭇 따끔거렸다. 잇목으로 기어가 무명소기를 끌어다 발치를 쐈다.
그래도 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불이나 좀 넣어줬으면. 그런데 여인이 들어와서 발 상한 데를 좀 보자고 했다.
그러고 까만 고약 같은 걸 주면서 무슨 곰 쓸개니까 잠깐 붙여둬 보라는 것이다.
이전 자기 남편이 나무를 하다가 발을 상해가지고 쓰던 남저지이라고 하였다.
약이 살에 닿자 맞아 상처가 더 따끔거리고 더 아려웠다.
노인은 두 손을 가져다 발목을 졸였다. 그럼으로 해서 아픈 감각을 덜 느끼려는 듯이 그러다가 미안하지만 방에 불 좀 떼 주시오.
여인이 난처한 듯 노인의 해스간 얼굴을 보며 금매 말이오 나음만 있으면 떼 드리면 좋겠소만.
그리고 아랫목에 손을 넣어 보았다. 여태껏 이불을 깔아놓은 때문일까 방이 거의 선뜻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이제도 무릎을 덜덜 떨며 이렇게 떨려서 노인은 꼭 이 방이 치워서 만이 그런 것은 아닌 듯 했다.
상처로 인한 오한이 찬 기운을 더하게 할 듯 하였다.
근데 말이오 나무만 있다면
이곳은 비교적 산이 험악한 남도 지방이지만 나무 사정이 좀 달랐다.
잔디 하나가 없는 순흥매인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지 20미를 나간 곳에 비로소 마을이 있고 나무가 있었다.
그것도 나무와는 동국방으로 나가야 했다. 서남은 붉은 흙매를 넘고 넘어간 저편에 아득한 들만이 끝없이 펼쳐 있는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집이 안 가고 있는 있게 된 것은 그래도 골짜기 있는 몇 대기의 전답을 의지하는 대서인지 몰랐다.
나 엄마는 해마다 흉작인 해는 별 수 없이 나무 하는 해마다 전답에서 나오는 집보다 집, 보리대, 콩대 같은 걸로 이어됐다.
그것도 흉제에게는 별 수 없이 동구로 이십미를 나가서 해다 떼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올해는 난리로 통이 농사를 못 가꾼 데다 어쨌지 거두어들이 집단마저 산 사람들이 오며 가며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난리도 난리지만 홀로 연이는 눈 구멍 길을 20이나 가서 나무를 해올 수가 없었다.
불가 단말을 싼 마음이며 궤짝 같은 걸 뜯어서 떼고 마지막 닭의장까지 부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밥도 단지 아침에 불 한 번을 떼 가지고 새 기것을 다 지었다.
우선 이렇게라도 죽지 않고 사는 것만이 다행이라 여겼다.
예 인내는 인민군이 들어와 가지고 사흘이 지난 뒤에까지도 인민군이 왔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자가 저장에 나갔어야 비로소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인이 몸을 망치고 식구를 잃은 것도 역시 이날 밤이었다.
이곳이 이렇듯 세상 소식이 뜬 것은 이 집이 면 행정에서 전혀 도외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십리 밖에 마을이 있는 이 골짝은 본래 지역상으로는 상면 학원리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 집만은 또 본래부터 번지도 없고 돼지 새도 없는 집이었다.
이 집 한 집을 보고 이 심리 골짜기까지 조사해 가는 관리도 없고 연락해 주는 구장 반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젊었을 적에 이 집을 마련한 이 집 남자 역시 그런 문서적인 것에는 흥미가 없는 이인이었다.
그저 일하고 먹는 것만을 귀하게 길 뿐 그런 집문사나 호적 같은 것은 또 있어서 못 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도민증도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 해서 또 아쉬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전답을 갖고는 한편 장날이면 겨우 저자에나 나가서 명태 말리나 사가지고 오는 게 고작 인 때문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 역시 그 저자에나 나가서 알 도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들은 그걸로써 만족했던 것이다.
노이는 거 후 사흘 동안을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아침에 더운 밥 한 수를 먹으면 낮과 저녁은 그대로 냉반이었다.
반찬은 겨우 갓물로 숨을 죽였을 뿐인 새까만 배추 김치와 고치 조림과 간장 뿐이었다.
어쩌지 몸을 일으키고 문을 열어보았다. 선뜻 찬 바람이 몸에 우와히 감겼다.
오늘 따라 바깥 날씨는 한껏 푹하고 거드름이 방울방울 놓고 있는데도 이내 문을 들어 떠쳐버렸다.
장구멍 사이로 절로 들어 비치는 바깥 사람 그림자가 있었다.
여인이었다. 그새 눈이 녹고 차차 마르며 있는 마당 가운데서 무슨 풀을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뒤에는 늙은 수케가 앞다리에 턱을 괴고 느물느물 여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추운디 그만 들어가거라. 잠시 후 여인이 개에게 말하자 걔는 코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켜고 나서 어슬렁 어슬렁 부엌으로 들어갔다.
노이는 문득 창구멍에서 눈을 돌려 방바닥을 보았다.
바야으로 눈부신 햇살이 창구멍으로 새어 들어와 방바닥에 조그만 동그라미를 그렸다.
손을 갖다 거기에 데었다 따스했다. 그러다 노인은 다시 문을 열어 잡고 밖으로 나오면서 그 자식 하나 있는 것이 꼭 온수로 생겨났던 것이로구나 한숨과 함께 속으로 내거렸다.
노인이 짜장 이곳으로 내달아온 것은 빨치산이 식구들을 방에 가둬둔 채 집에 불을 질러 버린 때문이었다.
노인 아들 득새가 그 마을 좌익 우두머리로 있으면서 여당과 정을 맺고 지냈던 까닭에서였다.
밖으로 나온 노인은 열이 약간 내렸을 뿐인 발을 철쭉철축 뛰어 옮기면서 대문 길로 나갔다.
여인이 풀을 먹이다가 까만 눈을 이쪽으로 돌리며, 아니 추운 뒤 못 하러 나가느냐고 물었다.
너희는 대답이 없으니까 들어가시오. 그러나 너희는 아무 말 없이 대문에 의지하고 이 전날 자기가 달려오던 산비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힘이 적이나 하면 꼭 가서 식구들의 재 묻은 얼굴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싶은 것이다.
만일 그 재 묻은 얼굴이라도 보지 못하면 삐라도 한번 만져 봤으면, 뼈라도 한번 만져봤으면 싶은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더 이상 대물기에 서 있지 못했다. 눈부신 햇살을 보기가 저주스러운 것이다.
식구가 그렇듯 불타 죽은 마당에 무슨 나치를 들고 어디로 갈 것인가 싶었다.
노인은 차차 맥이 풀리자 그 자리에 덥썩 주저앉아 버렸다.
햇살이 노이는 눈꺼풀에 와 어지러이 스며들었다.
눈이 자꾸만 감겨들고 졌다. 어른 어른한
그림자들만이 어둠 속에서 더욱 어지러이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데 무에 덥석 어깨에 부딪히면 노인 양반이 들어가시라 해도 여인이 와서 이렇게 했다.
노인이 희멀건 눈을 돌려 멍한 여인을 쳐다보았다.
어서 들어갑시다. 여인은 처음부터 이 노인의 곡절을 물리려 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의 곡절을 이야기 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아무튼 이 노인이 여기를 떠나서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거니 하는 것만은 짐작이 갔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세상 소식이 그렇게 했던 골짜기에서 더욱 혼자 남겨진 여인은 선가 학계에 세상의 다른 눈치를 몰랐다.
오늘도 어쩌다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한 사람 있어 그에게 물은 즉 경찰이 들어온 뒤로 차차 길도 틀리고 피난 간 사람들도 돌아온다고 여인은 오직 자식 잃고 남편 붙들려 간 것만을 슬퍼할 뿐 이 노인을 돕는 데는 딴 의심 같은 것이 있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온 노인은 다시 무명성이로 발찌를 싸고 이불을 들었다.
참 무자 상팔자라더니 놈이 꼭 원수로 생겨났던 것이 이로구나.
겨울 해가 서편에 기울었다고 느끼자 땅거미가 깃들이고 저녁 찬바람이 문풍기를 올렸다.
노인은 웅크린 몸을 더욱 웅크리고 이불 자락을 샅샅이 여미었다.
무엇보다 발 뛰고 치가 수시고 등이 실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등을 갖다 슬며시 벽에 붙여보았다. 사람의 등과는 아예 달랐다.
바람 벽에서 내놓치는 찬 기우 많이 더욱 등을 시르게 할 뿐이었다.
사람이라도 한 사람이 있었으면 혼김이 턱없이 그리웠다.
마침 내 노인은 이불을 재끼고 일어났다. 밤발레그 부름 소리가 한결 자지러졌다.
밤벌레 울음소리가 자지러질수록 한층 더해가는 밤의 고여가 노인의 허허한 심해를 더욱 산란케 했다.
이 웃고 바지를 죽이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달빛만이 횡행한 토담의 하얀 눈이 어지럽도록 눈부셨다.
그리고 간혹 반짝이는 눈 우모 소리가 초롱초롱 빛났다.
어디를 둘러봐도 검푸른 산봉우리 들만이 밤하늘을 아득히 도사리고 있을 뿐 한채는 죽음처럼 잠잠하다.
노인이 절축 절축 안방으로 건너갔다. 사람은 혼김도 혼김이지만 하루 한 차례씩이라도 불을 떼는 안방은 아무래도 덜 차고 포근할 것 같았다.
물함 없는 짓이긴 하지만 잠깐 입목에라도 앉아서 몸을 녹이라 하였다.
사실 손발이 마비되듯 얼어 굳은 노이는 지금의 몸을 따스로혔으면 하는 생각밖에 다른 염치 같은 것은 잊고 있었다.
봉당에 올라서서 가만히 오늘 일자 달빛이 잇목 농에 들이 비쳤다.
그뿐 달이 비치지 않은 것은 도리어 깜깜하였다. 문을 닫히고 들어와 가만히 방바닥을 짚어봤다.
사랑방보다 약간 훈훈하였다. 그러나 횡댕그렁한 기미는 다를 데 없었다.
역시 혼자 방이어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한 손으로 아랫목을 더듬어 봤다.
사람이 없었다. 이런 그리고 다시 방바닥을 두루 다듬어 봤으나 방바닥은 대자리만이 우틀두틀할 뿐 사람이 없는 것이다.
순간 노희는 워낙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머리끝이 곤두섰다.
몸을 가만히 돌이키고 다시 구석을 더듬거려 보다 선뜻 나무 조각 같은 게 만지였다.
물레였다. 그리고 옆에는 실 뭉치가 몇 개 궁그어 있을 뿐이었다.
노이는 가만히 일어서서 다시 벽을 더듬어 봤다. 병과 인도와 바가지 그리고 여인의 치마가 한 발 걸려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방금 여인의 치마가 잡힌 때만은 적이 마음이 따스로웠다.
여인이 분명히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혹 뒷간이라도 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여인은 뒷간에도 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광이나 부엌 같은 데서 잘 일는 없겠는데.
그러자 노인은 그만 자기도 모르는 새 방을 나와 사랑으로 건너고 말았다.
어두운 방에서 위에 쫓아 나오는 것과 같은 무서움을 느끼면서.
이튿 날 아침 여인이 어느 때처럼 밥상을 가지고 왔다.
역시 아침밥은 김이 무릎 끓이는 따순 밥이었다. 노인이 사람스에 여인을 그렇게 아름마한 얼굴을 바라보며 아니 저녁에는 어디서 주무셔 하고 말이 곧 나오래는 걸 꿀꺽 삼켰다.
간밤에 놀라고 궁금해하던 것을 생각하면 곧 묻고도 싶었으나 그대로 참은 것이다.
밥상을 들여놓은 여인이 상머리에 앉으며 그새 발은 좀 나으신 거라고 예 그저 그만하요.
어째 약은 자주 갖다 붙이지요 예 갈아 붙이고 마니라고 겨울 일어나서 그것이 그렇게 시 안 나은 것이요.
노희는 여인이 자꾸 말을 건네는 게 귀찮았다. 단지 하루 한 끼야 인 따순 밥을 따을 때 얼른 한 수라도 더 떠 넣어서 속을 풀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거듭 난리도 난리도 그렇게 한 날리는 처음 됐어요 처음 봤어요.
그러자 노인이 입은 이어 밥을 랭큼 삼키고 나 속이 떨려서 그런디 밥 좀 먹고 이야기합시다 아니 이불이 잠 왔는데 그렇게 춥습지요 나는 어저녁에도 별로 추운지 모르고 잤어.
순간 노희는 다시금 어쩌 이거 어디서 잤느냐고 물으려다가 역시 그만뒀다.
그리고 여인의 얼굴을 새삼 또 한 번 봐보았다. 눈동자가 까만 여인은 가루만 보는 40대의 여인 같지 않게 팽팽하였다.
그리고 어디라 없이 우수가 어린 표정에는 도리어 느긋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런 여인의 오른편 턱에 웬 흰 털이 한 홀 붙어 있었다.
노인이 얼핏 웬 털인가 해서 다시 한 번 쳐다보는 동안 털은 때마침 문통으로 새어드는 바람에 날려 상 옆으로 갖다 내다
해가 저물고 다시 밤이 엄습했다. 노인은 어젯밤 홍김과는 다른 또 하나의 호기심이 마음을 채웠다.
여인이 도대체 어디서 자는 자정이 가까울 지이에서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여전히 푸른 달빛만이 휘엉청하게 받고 허얀 눈이 어지럽도록 눈부셨다.
봉당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모양 방바닥을 더듬거려 보았다.
여인이 없었다. 가만히 무릎 걸음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벽을 더듬어 봤다.
그래도 여인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사람이고 그러다가 노이는 문득 자기도 모르는 새 셋 문 부엌과 방 사이에 있는 새 문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봉문 틈새로 새어드는 달빛이 한 줄기 부뚜막에 비쳤다.
그리고 그 부뚜막이였다. 웬 사람들 둘이 이불을 들 쓰고 누워 있는 것이다.
노이는 두루 짐작이 갔다. 저래배도 한 사람 분명히 이고 또 한 사람은 분명 사람 아닌 개일 거라는 짐작이.
그러고 보니 아침에 애이 떻게
흰 털이 붙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인은 한 편 얄미 없고 한 편 반가웠다.
하나는 여인이 아무리 쓸쓸하기로 서니 하필이면 기하고 함께 자는가 하는 반감이요, 다른 하나는 여인을 찾은 안심과 기쁨이었다.
잠시 후 노이는 사랑 바울과 이불을 걸어 안고 안방으로 돌아왔다.
이왕 비오들 바이야 자기가 이 방에서 자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너희는 밤이 한껏 깊은데도 좋은 음이 쉬어가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가만히 앉으면 벽에 기대고 부엌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간열린 두 입김의 맞부딪치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순간 노이는 야릇한 분노가 물겨졌다. 고요한 세상들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예스 부엌의 인기척을 잊으려고 하였으나, 신경은 자꾸만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문득 아픈 발 뒤꿈치를 만져봤다. 어느새 또 뿜뿜 뚱뚱 부어 있었다.
날새 다시 굶긴 모양이었다.
어서 이 상처가 나왔으면 좋겠다. 어서 나와 가지고 저놈 개라도 때려잡아서 소복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러자 너희는 또 죽은 식구들 얼굴이 어지러이 떠올렸다.
어느 날, 개울가에서 그슬려 죽은 기들 모양 새까맣게 타 죽었을 얼굴들이 힘이 자기나 하면 지금이라도 곧 쫓아가서 잿더미가 된 집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너희는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는 이 세상에 영원히 얼굴을 내놓을 수 없는 죄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그리고 자자 굳이 잠을 청하였으나 졸리지가 않았다.
부엌의 인기척이 자꾸만 신경이 거슬리는 것이다.
사실 부엌에서는 무슨 소리 하나 들릴 일이 없는데도 가만히 일어나서 창궁으로 부엌을 내다 봤다.
부엌문 틈새로 새어드는 달빛이 한 줄기 부뚜막을 비쳤다.
그 위에서 여전히 여인과 개가 자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브렌드 쫓아가서 개를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
여인도 떼밀어 버리고 싶었다.
순 고얀 것들 같으니라고. 너희는 사랑방에서 자고 난 때보다 몸이 훨씬 가벼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밤도 마음 방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