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 - 대사와 지문

원작: 소문

형식: 낭독극

유형: -

작성자: 김병한

내용:

장면 1. 꺼꿀네 집 모퉁이
[밤새 바람. 머슴이 고지서를 들고 서 있고, 선애는 물동이를 들고 멈춰 섭니다. 뒤쪽 골목에 떠벌네가 몸을 숨겨 지켜봅니다.]

머슴: 아, 별것 아니어. 받어둬.
머슴: 개불알노무. 내우는 무슨 내우야. 나, 바쁜게 얼렁 받아둬.
머슴: 아, 염려 말고 받어둬.

[선애가 마지못해 종이를 품에 넣고 떠납니다. 떠벌네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지나가는 아낙을 붙듭니다.]

떠벌네: 아니, 내가 방금 꺼꿀네 집 외진 모퉁이를 돌아오자니께, 고갯집 나주댁 딸하고 그 전에 그 집서 머심을 살던 안골 반장네 머심이 무슨 편지를 가지고 주고 받고 하드랑께. 외진 모퉁이에서… 서로 받으라거니 안 받겠다거니 한참 찌우락거리고 있드란 마시.
어떤 아낙: 그래이.
떠벌네: 나, 참, 우서운 일도 다 봤네잉.

장면 2. 또술네 집 앞, 눈 오는 밤
[문 안쪽에서 여인들 수군거림. 문밖에 형님이 서서 듣습니다.]

어떤 아낙: 아니, 나, 그런 줄 몰랐더니 고갯집 나주댁 딸이 안골 반장네 머심하고 뭣을 주고 받았다 하데잉?
다른 아낙: 금매 그런 말이 있데, 참.
어떤 아낙: 아, 그, 잡녀러 머심이 꺼꿀네 집 뒤꼍에 가 서 있다가 무단히 물 길러 가는 사람을 틀어잡고 그랬단 않든가.
다른 아낙: 그러니, 혹, 그 머심이 나주댁서 머심을 살 때부터 무슨 내통이 있었는지도 알겄는가.
어떤 아낙: 그래, 나주댁 딸에게 혼삿말이 비치는 것을 보고 방해를 할라고 그러는지도 모를네.
아낙 3: 참말로 나주댁 딸이 그랬을께?
아낙 4: 하기사 옛날부터 점잖은 개가 부숭에 몬자 올라간다고들 않든가.
어떤 아낙: 참 사람의 속이란 모를네잉.

장면 3. 나주댁 집 툇마루
[나주댁이 누룩을 고르다 형님을 맞습니다. 안쪽 방문 뒤로 선애가 있습니다.]

나주댁 형님: 동새, 티 추리는가.
나주댁: 예. 성님 오시요. 어서 오씨요.
나주댁 형님: 아, 그런디 동새… 저미 저 아이가 안골 반장네 머심하고 무슨 일이 있었드랑가?
나주댁: 웬이라우! 일은 무슨 일이라우.
나주댁 형님: 나, 또술네 집에 모실을 가자니께, 모다 그런 말들을 하고 있데.
나주댁: 나는 첨 듣는 말이요. 뭣이라고들 해쌉디여?
나주댁 형님: 그걸 떠벌네가 봤다고 하는 모양이데.
나주댁: 아가, 너, 안골 반장네 머심한테서 뭣 받은 일 있냐?
나주댁 딸: 없어.
나주댁: 그럼 무슨 말이 그렇게 났다냐?
나주댁 딸: 이전 날 고지서 받은 것 보고 그러는 것 아닌가? 그때 판례 어메가 지내가다 봤어.
나주댁: 그때 다른 것은 받은 일 없냐?
나주댁 딸: 없어.
나주댁: 말도 한 일 없지야?
나주댁 딸: 말도 안 했어. 그때 엄니한테 얘기 했잖여.
나주댁: 그런 사람 죽일 예편네가 다 있소?
나주댁 형님: 빈총도 안 맞은 것만 못하다고 혼사조차 어울려지려고 하는디 안 들은 것만 하는가.
나주댁: 가만있으시요. 나, 떠벌네한테 가서 댈라우.
나주댁 형님: 동새, 그렇게 욱하지 말고 앉게. 이런 일일수록 서서히 따져야제. 그렇게 욱하면 말만 더 나는 것일세.
나주댁: 아니라우! 나, 지금 가서 댈라우.
나주댁 형님: 금매, 그러지 말고 이리 앉게.
나주댁: 이런 얼척 없는 일이 있다니!

장면 4. 떠벌네 집 마당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나주댁이 성큼 들어서고 떠벌네가 마루에서 나옵니다.]

나주댁: 판례 어매 집에 있소?
떠벌네: 뭣하실라우?
나주댁: 나, 물어볼 말이 좀 있어서 왔소. 아니, 판례 어메. 우리 선애가 안골 반장네 머심한테 뭣 받은 것을 봤습디여?
떠벌네: 보기는 뭣을 봐라우.
나주댁: 그럼 무슨 말을 그렇게 퍼뜨리고 다녔습디여?
떠벌네: 퍼뜨리기는 무슨 말을 퍼뜨렸어라우?
나주댁: 그럼 동네 사람들이 안 한 말을 했다고 하께라우? 응! 집이처럼 안 한 말도 했다고 하고, 한 말도 안 했다고 하께라우. 금매 우리 선애가 꺼꿀네 집 뒤꼍에서 뭣을 받습디여?
떠벌네: 나는 그런 말, 한 일도 없고 안 한 일도 없소.
나주댁: 그럼 이리 나오씨요. 동네 사람들한테 가서 댑씨다.
떠벌네: 손 놔두씨요. 손 놔두고 말하씨요.
나주댁: 나와… 아, 이리 나와… 대관절 우리 딸이 뭣을 주고 받었는가 가 대보자.
떠벌네: 손 놔두랑께. 아, 손 나두고 말해.
나주댁: 응! 할 말 있고 안 할 말 있제. 말이면 다 말인가. 어서 가 대보자.
떠벌네: 금매 손 놔두고 말해.
나주댁: 이 뒷심 무른 예편네 봐… 아 그런 말 안 했으면 얼렁 가 대보장께? 아, 안 했으면 가 대봐.
떠벌네: 그럼 불 안 땐 귀뚝에서 냉갈 나께라우? 집이 딸한테 가서 물어보씨요… 응. 받은. 집이 딸한테 가서 물어봐.
나주댁: 이 사람 죽일 년 봐라~ 우리 딸은 그날 고지서밖에 받은 일 없다~ 늬 눈깔이 있으면 똑똑히 봤을 것이다. 이날 이때껏 손에 물 한 점 안 묻히고 키워온 내 딸이다~ 모실 한 번 안 보낸 내 딸이다. 우리 딸은 그날 고지서밖엔 말 한마디 건넨 일 없고 얼굴 한 번 쳐다본 일도 없다~ 가만있거라. 이 자리에 꼼짝 말고 있거라. 그 고지서를 갖다 늬 눈앞에 똑똑히 보여 주마.
떠벌네: 나, 꼬락사니 없는 년도 다 보것네. 아, 불 안 땐 귀뚝에서 냉갈 나께라우?... 자기 딸 단속 못했단 말은 않고 남한테만 대들고 지랄 맞네.
나주댁: 봐라~ 늬 눈 있으면 똑똑히 봐라. 이 고지서밖에 받은 일 없다. 이 혓바닥을 동강이 낼 년아. 밥 처묵고 배아지가 따땃하면 가만히 나자빠져 있제 뭣하러 남의 말을 퍼뜨리고 다니냐~ 이 눈구녘을 파버려도 안 시언할 년아. 늬가 가리사니 없는 년이란 것은 온 동네가 다 안다~ 당장 혀라도 뽑아 죽일 년아.
나주댁: 아니, 다들 보씨요예… 우리 딸은 그때 꼭 이 고지서밖에 받은 일 없단 말이요. 그런디 저 오살해 죽을 년이 그 따위 주둥이를 놀리고 나녔을께라우?
떠벌네: 아따… 누가 혀를 뽑아 죽일 년인지 모르겠네.
떠벌네: 그럼, 이년아. 너는 그때 내가 고무신 도둑질한 것을 참말로 봤디야… 이 육살해 죽을 년아. 지금도 내 분은 안 풀린다… 이 혀를 잘라 죽여도 안 아까울 년아. 이년아.
나주댁: 오냐. 이년~ 나는 참말로 봤다. 늬가 이년. 그때 고무신 전 머리에서 바꾸는 것을. 내,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장면 5. 우물가
[해가 중천. 우물가에 빨랫줄이 펄럭입니다. 나주댁이 물동이를 이고 와 사람들에게 하소연합니다.]

나주댁: 다들, 물어보씨요예… 원 세상에 그렇게 주책없는 년이 다 있으께라우? 어저께 구경꾼들도 봤지만, 우리 딸은 그때 납세고지서밖엔 받은 일 없단 말이요. 그것도 처음에는 죽어도 안 받을라고 하다가 그놈의 머심이 바쁘다고 한사코 떠맡기는 바람에 억지로 받었어라우. 그라고 말 한마디 한 일 없고 얼굴 한 번도 안 쳐다봤다우. 그런디 그 혀 빠져 죽을 년이 누굴 갖다 진구렁에 처넣을라고 무슨 편지를 받았다니. 뭣을 소군거렸다니 할 것이요. 다들 알다시피 이날 이때껏 모실 한 번 안 내보내지 안 했소? 참으로 꾸정물 나는 옷 한번 안 입히고 지애비 없이 서럽게 키워오지 안 했소?
나주댁: 그라고 요새 온사가 어울려질라고 하면서부터는 참말로 샘 질에 한번 내보내기를 두려워했어라우. 꼭 집에 앉혀놓고 지 일이나 보게 했어라우. 그런디 그 눈 곯아빠질 년이 똑똑히 보지도 못하고 그런 애먼 소리를 할 것이요… 그라고 어저께도 그런 말을 정 안 했으면 가서 대자고 한께. 그래도 이년이 속은 있는가 기어이 안 나올라고 버티드란 말이요. 아, 그렇지 않소? 지년이 떳떳하면 그렇게 떨고 꽁무니 뺄 것 뭣 있소…
소문: 나주댁 딸 선애하고 안골 동장네 머심하고 무슨 일이 있어더라며…

장면 6. 나주댁 집 / 사돈 방문
[집 안은 적막합니다. 시냇골 사돈이 들어옵니다.]

시냇골 사돈: 아니, 사둔네. 애기가 누구하고 무슨 말썽이 있었드라우?
나주댁: 아니라우. 말썽은 무슨 말썽이라우?
시냇골 사돈: 그럼 무슨 소문이 거까지 퍼졌다우? 듣자 하니 누 머심하고 무슨 말썽이 있었다고 그럽디다.
나주댁: 아니, 남자 집서 뭣이라고 합디여?
시냇골 사돈: 나도 아침까지 모르고 있었는디 남자 집서 와 가지고, 사둔네 큰애기가 어느 반장집 머심하고 무슨 편지를 주고 받었단다고 그래라우. 그라고 첨에는 그 머심을 데릴사위로 삼을라고 했던갑드라고도 하고. 남자 집서도 모르고 있었는디 동네 사람들이 몬자 알고 속닥러리드라고 합디다.
나주댁: 그래 사성은 안 보냅디여?
시냇골 사돈: 사성도 보낼라고 저고릿감까지 떠놨는디, 그런 말이 들린께 떠름해한 모양입디다.
나주댁: 그 주책없는 예편네가 빈말을 한 것인께. 염려 말고 사성이나 보내단다고 하씨요.
시냇골 사돈: 그런디 소문이 그렇게까지 났소잉?... 세상에 입들도 험하요잉?...
나주댁: 그런께 걱정 말고 보내려든 사성이나 보내라고 하씨요. 그라고 못 믿어우면 그 머심한테도 물어봐도 안다고 하씨요.

장면 7. 같은 날 저녁 / 술상과 역소문
[술상 위 전과 막걸리. 남정네 셋이 술잔을 돌립니다. 이윽고 모두 흩어지고 사돈이 다시 들어옵니다.]

어떤 아제: 술 맛이 참, 좋네, 거.
다른 아제: 전도 고기까지 넣서 안 먹을 만하든가.
어떤 아제: 제엔장, 대사 술은 우리가 몬자 묵었네 그랴.
시냇골 사돈: 아니, 사둔. 무슨 말이 또 그렇게 났다우?
나주댁: 무슨 말이라우?
시냇골 사돈: 동네 사람들한테 무슨 술을 먹였습디여?
시냇골 사돈: 남자 집서 와가지고, 동네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술을 한턱 미겠단다고. 그런 것 보께, 정말 자기 딸에게 허물이 있었던 것이 사실 아니느냐고, 사성을 안 보낼라고 해라우.
소문: 나주댁 혼사가 아주 깨져버렸다네…

장면 8. 떠벌네 집 / 머슴의 대면
[급한 발소리. 머슴이 문을 두드립니다. 떠벌네가 얼굴이 굳은 채 나옵니다.]

머슴: 판례 엄니, 이리 좀 나오시오.
머슴: 아니, 판례 엄니. 내가 고갯집 딸하고 뭣을 주고받습디여?
머슴: 아니, 내가 뭣을 줬가니 그런 말을 내고 다녔습디여. 어디 말 좀 해보씨요.
머슴: 에이, 여보씨요. 할 말 안 할 말이 따로 있제. 그런, 순, 억지소리를 해가지고 남의 혼사까지 깨지게 맨든 사람이 어디 있소.
머슴: 똑똑히 보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해서 쓸 것이요? 내가 그때 고지서밖에 뭣 더 줍디여? 고갯집 딸이 고개 한번 쳐들어 봅디여? 아니 내가 정 뭣을 줍디여?
머슴: 아니, 말 좀 해보씨요. 뭣을 줍디여?
떠벌네: 그럼 내가 잘못 말했는것이요.

[잠시 정적. 떠벌네 고개가 수그러듭니다. 어둠이 내려오며 소문 소리들이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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